외왕내제
IT 위키
더 많은 작업
외왕내제(外王內帝)는 밖으로는 중국 왕조의 책봉을 받는 제후국(왕)의 형식을 취하면서 안으로는 황제국의 제도와 칭호를 쓴 체제로, 고려 전기의 국가 체제를 설명하는 말이다.

고려는 송·거란 등 중국 왕조의 책봉을 받고 그 연호를 쓰는 등 대외적으로는 제후국의 형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나라 안에서는 천자국(황제국)에 걸맞은 제도와 격식을 썼다. 고려는 스스로를 '해동' 천하의 중심으로 보고 그 안에서는 황제를 자처했으며, 이는 오랜 분열을 끝내고 삼한을 하나로 합쳤다는 일통 의식에서 나온 자부심이었다.[1]
- 독자 연호 - 태조 왕건은 즉위하며 천수라는 연호를 썼다가 933년 후당의 책봉을 받으며 버렸다. 광종은 광덕(950), 준풍(960)을 썼다. 광종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독자 연호를 쓰지 않았고, 인종 때 묘청이 서경에서 '천개'라는 연호를 내걸었다.[2]
- 황도 - 960년 광종은 개경을 황도, 서경을 서도라 불렀다.
- 칭호 - 국왕을 '폐하', 왕의 명령을 '조서·제서·칙서', 왕 스스로를 '짐', 왕의 어머니와 후계자를 '태후'·'태자'라 불렀다. 『고려사』 악지의 「풍입송」은 고려 국왕을 '해동 천자'로 노래한다.
- 관제 - 중서문하성·상서성 같은 '성', 이부·병부 같은 '부'는 본래 천자국의 관청 이름이다.[1]
- 태조 왕건 청동상 - 1992년 개성 현릉(태조의 무덤) 근처에서 나온 청동상은 제후의 관이 아니라 황제가 쓰는 통천관을 쓰고 있다.[2]
-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 962년에 세운 철당간에 '준풍 3년'이라는 고려의 독자 연호가 새겨져 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