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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왕내제(外王內帝)는 밖으로는 중국 왕조의 책봉을 받는 제후국(왕)의 형식을 취하면서 안으로는 황제국의 제도와 칭호를 쓴 체제로, 고려 전기의 국가 체제를 설명하는 말이다.

'준풍 3년'(962) 명문이 있는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고려는 송·거란 등 중국 왕조의 책봉을 받고 그 연호를 쓰는 등 대외적으로는 제후국의 형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나라 안에서는 천자국(황제국)에 걸맞은 제도와 격식을 썼다. 고려는 스스로를 '해동' 천하의 중심으로 보고 그 안에서는 황제를 자처했으며, 이는 오랜 분열을 끝내고 삼한을 하나로 합쳤다는 일통 의식에서 나온 자부심이었다.[1]

황제국 체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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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연호 - 태조 왕건은 즉위하며 천수라는 연호를 썼다가 933년 후당의 책봉을 받으며 버렸다. 광종은 광덕(950), 준풍(960)을 썼다. 광종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독자 연호를 쓰지 않았고, 인종 때 묘청이 서경에서 '천개'라는 연호를 내걸었다.[2]
  • 황도 - 960년 광종은 개경을 황도, 서경을 서도라 불렀다.
  • 칭호 - 국왕을 '폐하', 왕의 명령을 '조서·제서·칙서', 왕 스스로를 '짐', 왕의 어머니와 후계자를 '태후'·'태자'라 불렀다. 『고려사』 악지의 「풍입송」은 고려 국왕을 '해동 천자'로 노래한다.
  • 관제 - 중서문하성·상서성 같은 '성', 이부·병부 같은 '부'는 본래 천자국의 관청 이름이다.[1]
  • 태조 왕건 청동상 - 1992년 개성 현릉(태조의 무덤) 근처에서 나온 청동상은 제후의 관이 아니라 황제가 쓰는 통천관을 쓰고 있다.[2]
  •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 962년에 세운 철당간에 '준풍 3년'이라는 고려의 독자 연호가 새겨져 있다.[3]
  • 대외 관계 - 송과 금은 때로 고려를 대등하게 예우했다. 고려는 거란·송·금 사이에서 책봉을 받으면서도 실리를 챙겼다(→ 현화사, 고려 거란 전쟁).
  • 원 간섭기의 격하 - 원의 부마국이 된 뒤 '짐'은 '고', '폐하'는 '전하', '태자'는 '세자'로 낮추었고, 왕의 묘호에 '조·종' 대신 원에 충성한다는 뜻의 '충' 자를 붙였다. 관제도 첨의부·4사 등으로 격하되었다(→ 원 간섭기).
  • 대한 제국 - 조선은 제후국 체제를 유지하다가, 1897년 고종이 '광무' 연호를 쓰고 황제로 즉위하며 대한 제국을 선포했다(→ 광무개혁).

비슷한 주제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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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시대 내용
외왕내제 고려 전기 통천관 쓴 태조상, 준풍 연호, 황도
소중화 의식 조선 후기 명 멸망 뒤 조선이 중화를 이었다는 의식 (→ 소중화 의식)
신해통공 조선 정조 육의전 외 시전의 금난전권 폐지 (→ 신해통공)
골품제의 일상 규제 신라 신분에 따라 집 크기·옷 색 제한 (→ 골품제)
울산항을 통한 아라비아 상인 교류 통일 신라 국제 무역항 울산
  1. ↑ 1.0 1.1 고려 국왕의 권위, 『한국문화사』 23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2.0 2.1 칭제건원,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