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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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 대첩(龜州大捷, 1019)은 거란의 3차 침입 때 상원수 강감찬이 이끈 고려군이 1019년(현종 10) 2월 귀주에서 돌아가던 거란군을 크게 무찌른 싸움이다.
- 흥화진 싸움 - 강감찬은 흥화진에 기병 1만 2천 명을 산골짜기에 숨기고, 큰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냇물을 막아 두었다. 거란군이 오자 막았던 물을 터뜨리고 복병을 내보내 크게 이겼다.
- 개경 방어 - 거란군은 곧장 개경으로 내려갔으나 강민첨이 자주에서, 조원이 마탄에서 뒤쫓아 쳤다. 강감찬은 병마판관 김종현에게 1만 명을 주어 개경을 지키게 했고, 거란군은 개경 가까이까지 왔다가 되돌아섰다.
- 귀주 싸움 - 1019년 2월 거란군이 귀주를 지나자 강감찬이 동쪽 들에서 맞아 싸웠다. 승부가 나지 않던 중 김종현의 군사가 도착하고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자 고려군이 기세를 타고 몰아쳤다. 석천을 건너 반령까지 쫓았으며, 살아 돌아간 거란군은 수천에 불과했다.[2]
현종은 영파역까지 나와 개선하는 강감찬을 맞고 금꽃 여덟 가지를 머리에 꽂아 주었다. 크게 진 거란은 더 이상 대군을 보내지 못했다. 고려는 거란의 연호를 쓰는 대신 강동 6주를 지켰으며, 강감찬의 건의로 개경에 나성을 쌓고(1029) 이어 천리장성을 쌓았다(→ 고려 거란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