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호헌 동지회(護憲同志會, 1954~1955)는 1954년 11월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한 야당과 무소속 국회의원들이 11월 30일 만든 원내 교섭 단체로, 이듬해 보수 야당인 민주당 창당의 모태가 되었다.

1954년 11월 27일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없애는 개헌안이 의결 정족수에 1표 모자라 부결되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이틀 뒤인 29일 사사오입(반올림)의 논리를 내세워 부결을 가결로 뒤집었다. 이에 항의해 본회의장을 나온 야당 의원들은 위헌 대책 위원회를 꾸리고, 11월 30일 민주 국민당 의원과 무소속 의원 60명이 헌법을 지킨다는 뜻의 호헌 동지회를 결성했다.[1]

호헌 동지회는 하나의 강력한 야당을 만들자는 신당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신당 촉진 위원회가 꾸려졌으나 조봉암 등 혁신계를 받아들일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고, 결국 혁신계를 뺀 채 1955년 9월 18일 민주당이 창당되었다. 민주 국민당은 민주당에 합류하며 해체했다. 배제된 혁신계는 따로 진보당을 만들었다(→ 진보당 사건).[2] 민주당은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장면을 부통령에 당선시켰고, 4.19 혁명 뒤 장면 내각을 이끌었다.

이승만 정부의 개헌과 저항

편집 원본 편집
사건 연도 내용
발췌 개헌 1952 부산 정치 파동 속 대통령 직선제 개헌
사사오입 개헌 1954 초대 대통령 중임 제한 철폐
호헌 동지회 1954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한 원내 교섭 단체, 민주당의 모태
진보당 사건 1958~1959 조봉암 처형
3.15 부정 선거 1960 4.19 혁명의 원인
  1. ↑ 사사오입개헌, 한국사 연대기,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28 확인.
  2. ↑ 민주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