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공단
IT 위키
더 많은 작업
개성 공단(開城工團)은 남측의 자본·기술과 북측의 토지·인력을 결합하려고 북한 개성시 봉동리 일대에 조성한 남북 경제 협력 공업 단지로, 2003년 6월 30일 착공해 2004년 12월 첫 제품을 생산했으며 2016년 2월 가동이 전면 중단되었다. 정식 이름은 '개성 공업 지구'이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 회담과 6·15 남북 공동 선언 뒤, 그해 8월 현대 아산과 북측이 공업 지구 개발에 합의했다(→ 김대중 정부). 북한은 2002년 11월 「개성 공업 지구법」을 제정해 남측 기업이 들어올 길을 열었다. 2003년 6월 30일 1단계 지구(100만 평, 약 330만㎡)에서 남북의 정치·경제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이 열렸다. 국가기록원 해설은 참석자를 300여 명으로, 당시 정부 보도 자료는 남측 120명과 북측 200여 명으로 적는다.[1][2]
- 가동 - 2004년 시범 단지에 기업이 들어서 12월 첫 제품이 나왔다. 2005년 10월에는 공단 안에 남북 당국자가 함께 머무는 개성 남북 경제 협력 협의 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노무현 정부).
- 성장 - 2007년 10월 1단계 기반 시설이 준공되었고, 2007년 문산과 봉동 사이에 화물 열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북측 근로자는 2005년 6천 명에서 2012년 1월 5만 명을 넘었고, 2010년 9월 입주 기업 누적 생산액이 10억 달러를 넘었다.
- 법 - 개성 공업 지구법은 공업 지구를 공장·상업·생활·관광 구역으로 나누고, 남측과 해외 동포, 외국 법인의 투자를 허용했다.[3]
2013년 4월 북한이 근로자를 철수시켜 다섯 달 가까이 가동이 멈췄다가 9월 재가동되었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뒤, 정부가 2월 10일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하면서 공단은 문을 닫았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