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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서얼 출신 실학자로, 발해를 우리 역사로 다루며 신라와 발해가 함께 있던 시기를 '남북국'이라 부른 『발해고』를 지었다. 호는 영재(泠齋)·고운당(古芸堂)이다.

서얼 출신으로 젊어서 이덕무·박제가·이서구와 함께 시를 지어 '사가(四家)' 시인으로 이름났고, 청의 문인들에게서도 재주를 인정받았다. 박지원·홍대용 등 북학파 학자들과 가까이 지냈다. 1779년(정조 3) 정조가 규장각에 서얼 학자를 쓰는 검서관을 두자 이덕무·박제가·서이수와 함께 첫 검서관이 되었다.[1] 그가 남긴 『고운당필기』에는 규장각에서 임금이 낸 시험에 검서관인 자신과 이덕무·박제가가 뽑혀 상을 받은 일 등 검서관 시절의 일이 적혀 있다.[2]

  • 『발해고』(1784) - 발해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서문에서 고려가 통일 신라를 남국, 발해를 북국으로 하는 역사를 쓰지 않은 탓에 옛 땅을 되찾을 명분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남북국 시대'라는 말의 출발점이 되었다.
  • 『이십일도회고시』 - 단군 조선부터 고려까지 우리 역사 속 21개 도읍지를 읊은 회고시 43편이다.
  • 『경도잡지』 - 서울의 풍속과 세시 풍속을 기록해 조선 후기 도시 생활 연구에 귀한 자료이다.
  • 그 밖에 『영재집』, 『고운당필기』, 『사군지』 등이 있다.[1]

4검서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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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대표 저술 특징
이덕무 『청장관전서』, 『사소절』 고증학, 『무예도보통지』 편찬 참여
박제가 『북학의』 수레·선박 이용, 소비 권장
유득공 『발해고』, 『경도잡지』 발해사 정리, 남북국 인식
서이수 - 첫 검서관 가운데 한 사람

관련 기출문제

편집 원본 편집
  1. ↑ 1.0 1.1 유득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
  2. ↑ 유득공, 『고운당필기』 제3권 「칠월 칠일 대책」, 한국고전종합DB(한국고전번역원 번역),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