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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일하며 여러 책의 편찬을 맡은 서얼 출신 실학자로, 북학파와 가까이 지내며 고증학에 힘썼고 박제가와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엮었다. 호는 형암(炯庵)·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이다.

어려서 몸이 약하고 집이 가난해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경서와 역사에 두루 통했다. 젊어서 박제가·유득공·이서구와 함께 시집 『건연집』을 내 '사가(四家)' 시인으로 불렸다. 박지원·홍대용 등 북학파 학자들과 사귀었으나, 경제 개혁론보다는 명말청초 고증학에 깊이 빠졌다. 1778년(정조 2) 사신 일행을 따라 연경(베이징)에 가서 청의 학자들과 교류하고, 고증학 책을 많이 가져왔다.[1]

규장각 검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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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9년 정조가 규장각에 서얼 학자를 쓰는 검서관을 처음 두자 박제가·유득공·서이수와 함께 뽑혀, 14년 동안 규장각에서 일했다. 규장각에 모인 귀한 책을 마음껏 읽으며 『국조보감』, 『규장각지』, 『송사전』 등의 편찬에 참여했고, 규장각의 시 짓기 시험에서 여러 차례 장원을 했다.[1]

정조는 군사 기예를 정리하려고 검서관 이덕무·박제가에게 장용영에 사무국을 두고 무예서를 고증·편찬하게 했고, 장용영 초관 백동수에게 기예를 시험해 간행을 감독하게 했다. 이렇게 24가지 기예를 그림과 함께 정리한 『무예도보통지』가 1790년 완성되었다.[2]

뒤에 사근도 찰방, 적성 현감 등을 지냈다. 정조의 문체반정 때 박지원·박제가와 함께 청의 가벼운 문체를 썼다는 지적을 받아 반성문을 바치기도 했다. 1793년 병으로 죽자 정조가 장례비와 문집 『아정유고』의 간행비를 내렸다.

  • 『청장관전서』 - 그의 글을 모은 전집이다.
  • 『사소절』 - 선비와 부녀자, 아이들이 지켜야 할 일상의 예절을 적은 책이다.
  • 『이목구심서』, 『청비록』(시화집), 『관독일기』 등이 있다.[1]

4검서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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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대표 저술 특징
이덕무 『청장관전서』, 『사소절』 고증학, 『무예도보통지』 편찬
박제가 『북학의』 청의 문물 수용, 수레·선박 이용, 소비 권장
유득공 『발해고』, 『경도잡지』 발해사 정리, 남북국 인식
서이수 - 첫 검서관 가운데 한 사람
  1. ↑ 1.0 1.1 1.2 이덕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
  2. ↑ 『정조실록』 권30, 정조 14년(1790) 4월 29일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되다」, 한국고전종합DB,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