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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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 동맹(羅唐同盟, 648)은 648년(진덕 여왕 2) 신라의 김춘추가 당에 건너가 태종을 만나 맺은 군사 동맹으로, 두 나라가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치고 그 뒤 평양 이남의 땅과 백제 땅은 신라가 차지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48년 이찬 김춘추는 아들 문왕과 함께 당에 갔다. 당 태종은 광록경 유형을 교외까지 보내 맞이했고, 김춘추는 국학에 나아가 석전과 강론을 보기를 청했다. 태종이 사사로이 불러 품은 뜻을 묻자, 김춘추는 백제가 해마다 쳐들어와 수십 성을 빼앗고 당에 조회하는 길을 막고 있으니 군사를 빌려 달라고 청했고, 태종은 출병을 허락했다. 김춘추는 신라의 관복을 당의 제도에 따라 고치겠다고 청했고, 태종은 그를 특진, 문왕을 좌무위장군으로 삼았다. 김춘추는 아들 하나를 당에 남겨 숙위하게 했다.[2]
671년 문무왕이 당의 장수 설인귀에게 보낸 답서(답설인귀서)에는 이때 태종이 "내가 두 나라를 평정하면 평양 이남과 백제 땅은 모두 신라에 주어 길이 편안하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계책과 군사 행동의 시기를 정해 주었다고 적혀 있다. 이것이 단순한 청병이 아니라 전쟁 뒤의 영토 분할까지 정한 군사 동맹이었음을 보여 준다.[3]
- 당 제도 수용 - 649년 신라는 당의 관복을 입기 시작했고, 650년에는 고유 연호를 버리고 당의 연호 영휘를 썼다. 진덕 여왕은 손수 「태평송」을 지어 당 고종에게 보냈다.
- 집사부 설치(651) - 왕명을 받드는 집사부를 두어 왕권을 뒷받침했다.
- 백제·고구려 멸망 -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한 뒤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668년 문무왕 때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 동맹의 결렬 - 당이 백제 땅에 웅진 도독부, 평양에 안동 도호부를 두고 신라까지 계림 도독부로 삼으려 하자 약속은 깨졌고, 670년 나당 전쟁이 시작되었다.
동맹이 맺어진 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삼국사기』 본기는 648년의 일로 적었지만, 김인문 비 조각에는 김춘추가 특진 벼슬을 받은 때가 647년으로 되어 있어 1년 앞선다.[2] 반대로 648년은 김춘추가 당에 간 해일 뿐이고 동맹이 실제로 성립한 것은 649년이며, 김춘추가 구두 약속이 아니라 조서를 받았다고 보는 연구도 있다.[4]
- ↑ 삼국통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 ↑ 2.0 2.1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 진덕왕 2년(648),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 ↑ 나당군사동맹, 『신편 한국사』 9,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 ↑ 나당동맹의 성립 과정, 김덕원, 『민족문화연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초록,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