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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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왜란(三浦倭亂, 1510)은 1510년(중종 5) 4월 삼포(부산포·제포·염포)에 머물러 살던 일본인들이 쓰시마(대마도)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폭동이다.
조선은 1426년(세종 8) 부산포·제포(웅천)·염포(울산)를 열어 일본인의 교역을 허락하고, 무역이 끝나면 돌아가게 하되 오래 머문 일본인(항거왜인) 60명만 남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머무는 일본인은 해마다 늘었고, 이들의 법규 위반도 잦아졌다. 연산군 때 느슨해진 통제를 1506년 즉위한 중종이 엄하게 바로잡자 불만이 커졌다.[1]
1510년 4월 제포·부산포의 항거왜인 우두머리 대조마도 등 4천~5천여 명이 쓰시마 도주가 보낸 배의 도움을 받아 봉기했다. 이들은 부산포를 공격하고 제포 첨사 김세균을 납치했으며 웅천과 동래를 포위했다. 조정은 황형·유담년을 경상좌·우도 방어사로 보내 15일 만에 진압했고, 삼포의 일본인은 모두 쓰시마로 달아났다.[2]
피해는 조선 쪽 272명이 죽었다는 데 두 출처가 같다. 불탄 민가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796호, 『신편 한국사』가 800여 호로, 죽은 일본인은 앞의 것이 295명, 뒤의 것이 300여 명으로 적는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