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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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 체제(鎭管體制)는 조선 세조 때 전국의 지방군을 거점 고을인 거진(巨鎭)을 중심으로 묶고, 각 진이 스스로 적을 막도록 한 조선 전기의 지방 방어 체제이다.
- 주진 - 각 도의 병마절도사(육군)와 수군절도사(수군)가 있는 곳. 도 전체의 군사 지휘권을 가졌다.
- 거진 - 주진 아래의 거점 고을. 부윤·목사·부사 같은 수령이 첨절제사를 겸해 주변의 여러 진을 거느렸다.
- 제진 - 거진에 딸린 고을. 군수·현령·현감이 동첨절제사·절제도위를 겸했고, 해안 요충지에는 무관인 만호를 두었다.
- 자전자수 - 각 진이 스스로 싸우고 스스로 지키는 것이 원칙이었다.
- 정병 - 1459년(세조 5)부터 1464년(세조 10)에 걸쳐 시위패·영진군·정군 등 지방 육군을 정병으로 합쳤다.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차례가 되면 서울에 올라가 숙위하거나 요새지에 머물러 지켰다.
- 이 체제는 약간 고쳐져 『경국대전』에 실렸다. 관찰사와 수령이 행정과 함께 군사 지휘권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1]
- 약점 - 방위망이 전국에 너무 넓게 퍼져 있어 실제 싸움에서는 힘을 모으기 어려웠다. 군사를 잘 모르는 문관 수령이 지휘권을 쥐었고, 16세기에는 군역 대신 베를 받는 방군수포가 퍼져 진에 군사가 거의 남지 않았다.
- 제승방략 체제 - 삼포왜란(1510)과 을묘왜변(1555)을 겪으며, 적이 쳐들어오면 각 고을의 군사를 미리 정한 방어 지점에 모으고 중앙에서 내려보낸 장수(경장)가 지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북방에서는 니탕개의 난(1583) 뒤 정비되었다.
- 임진왜란 - 제승방략은 1차 방어선이 무너지면 뒤에 남은 군사가 없다는 약점이 있었다. 1592년 경장 이일이 상주에서 패하는 등 큰 전쟁에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고, 전쟁 중 유성룡 등이 진관 체제를 다시 정비하자고 주장했다.[3] 이후 속오군과 훈련도감을 중심으로 군제가 바뀌었다(→ 임진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