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유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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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 유지법(治安維持法, 1925)은 1925년 일본이 '국체 변혁'과 '사유 재산 제도 부인'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를 처벌하려고 제정해 조선에도 시행한 법으로, 일제가 사회주의 운동과 독립운동 전반을 탄압하는 데 쓴 대표적인 사상 통제 법령이다.
1925년 4월 일본에서 공포되어 5월부터 조선·타이완 등 식민지에도 시행되었다. 같은 해 일본이 소련과 국교를 맺고 일본 본토에서 보통 선거법이 통과되면서, 사회주의 사상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만든 법이다. 제1조는 국체를 변혁하거나 사유 재산 제도를 부인할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가입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고 정했다. 조선 총독부와 법원은 '조선의 독립을 꾀하는 것은 국체의 변혁'이라고 해석하여 이 법을 사회주의자뿐 아니라 모든 독립운동가에게 적용했다.[1]
- 처벌 대상 - 결사의 조직·가입뿐 아니라 그 목적을 실행하려고 협의하거나 선동한 사람, 돈을 대 준 사람까지 처벌했다. 국외에서 한 행위도 처벌할 수 있게 했다.
- 사상 경찰 - 법을 집행하려고 사상 사건을 전담하는 고등계 경찰과 사상 검사를 두었다. 조선에서는 일본보다 조문을 더 가혹하게 해석해 엄하게 처벌했다.
- 적용 사례 - 1925년 11월 조선 공산당 검거(제1차 조선 공산당 사건)를 시작으로 사회주의 단체, 학생 비밀 결사, 노동·농민 조합, 1942년 조선어 학회 사건 등에 두루 적용되었다.
- 1928년 개정 - '국체 변혁' 결사의 지도자에 대한 최고형을 사형으로 높였다.
-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1936) -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형을 마치거나 집행 유예를 받은 사람을 계속 감시하고 사상 전향을 강요했다.
-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1941) - 형기를 마친 사상범이라도 다시 죄를 지을 우려가 있다며 재판 없이 계속 가둘 수 있게 했다. 같은 해 치안 유지법도 7개 조에서 65개 조로 전면 개정되어 예방 구금 제도가 들어갔다. 민족 말살 통치 시기 독립운동가를 사회에서 격리하는 수단이 되었다.
- 폐지 - 일본 패망 뒤 1945년 10월 연합군 총사령부의 지시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