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사회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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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사회 제도는 고려가 흉년과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을 돕고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둔 흑창·의창·상평창·제위보·동서 대비원·혜민국·구제도감 등의 구휼·의료 제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농업 사회였던 고려는 가뭄·홍수와 전염병이 닥치면 농민이 쉽게 몰락했다. 나라는 농민이 무너지면 세금과 군역을 거둘 수 없었으므로, 곡식을 빌려주거나 나누어 주는 창고, 물가를 조절하는 기관, 가난한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 기관을 두었다. 재해가 나면 세금을 줄이거나 면제하는 재면법도 시행했다.[1]
| 기관 | 설치 | 내용 |
|---|---|---|
| 흑창 | 태조 |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거두어들인 빈민 구제 기관 |
| 의창 | 성종(986) | 흑창을 넓혀 개경에 둔 구휼 기관. 현종 때 지방 군현에도 두었다. 곡식을 무상으로 주는 진제와, 가을에 이자 없이 원곡만 갚게 하는 진대를 함께 했다. |
| 상평창 | 성종(993) | 개경·서경과 12목에 두고, 곡식 값이 쌀 때 사들이고 비쌀 때 팔아 물가를 조절했다. |
| 제위보 | 광종(963) | 기금을 마련해 그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고 병자를 치료했다. |
- 보(寶) - 기금을 만들어 그 이자로 사업을 이어 가던 고려의 재단. 제위보 말고도 학문을 돕는 학보(정종) 등이 있었다.[2]
- 제위보는 광종이 귀법사를 세우던 해에 두었다. 1101년(숙종 6)에는 가난한 백성을 보리가 익을 때까지 먹여 살리게 했고, 1391년(공양왕 3) 폐지되었다.
- 동서 대비원 - 개경의 동쪽과 서쪽에 두어 가난한 환자를 치료하고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돌보았다. 조선의 동서 활인서로 이어졌다.
- 혜민국 - 예종 때(1112) 두어 백성에게 약을 지어 주었다. 조선의 혜민서로 이어졌다.
- 구제도감·구급도감 - 전염병이나 큰 재해가 생기면 임시로 두어 병자를 치료하고 죽은 사람을 묻어 주었다.
고려 중기에 나라 재정이 어려워지고 지배층이 의창 곡식을 빼돌리면서 의창은 이름만 남았다. 고리대가 번지자 백성의 어려움이 커졌고, 고려 말에 다시 의창을 세웠다. 조선은 고려의 의창을 이어받았다가 뒤에 환곡 제도로 바꾸었고, 환곡은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의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