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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교(道敎)는 신선 사상을 바탕으로 불로장생과 현세의 복을 구하는 중국의 도교가 삼국 시대에 전해져 우리 고유의 신선 사상과 어우러진 흐름으로, 고구려 말에 나라의 종교로 받아들여지고 고려와 조선 전기에는 나라를 위해 하늘과 별에 제사하는 초제로 이어졌다.

도교는 옛 민간 신앙과 신선설을 중심에 두고 노장사상·음양오행·의술 등을 보태 불교의 조직을 본떠 이룬 종교로, 불로장생과 현세의 복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 사상과는 밀접하지만 구별된다. 한국에서는 나라를 위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재초(초제) 중심의 도교가 두드러졌다.[1]

  • 고구려 - 624년(영류왕 7) 당 고조가 도사와 천존상을 보내 『도덕경』을 강론하게 했다. 643년(보장왕 2) 3월 연개소문이 "유교·불교·도교 삼교는 솥의 세 발과 같아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된다"며 도교를 청하자, 당 태종이 도사 숙달 등 8명과 『노자도덕경』을 보냈고, 왕은 불교 사원을 내주어 머물게 했다.[2] 고분 벽화의 사신도(청룡·백호·주작·현무)에도 도교의 영향이 보인다.
  • 백제 - 신선이 사는 산과 봉황을 표현한 백제 금동 대향로, 산과 구름을 새긴 산수무늬 벽돌에 도교의 이상향이 담겼다.
  • 신라 말 - 당에 유학한 최치원 등이 수련 중심의 도교를 접했다. 최치원은 당에서 벼슬할 때 도교 제사의 축문인 청사를 짓기도 했다(→ 최치원).
  • 고려 - 하늘과 별에 지내는 초제가 자주 열렸다. 예종은 송에 다녀온 이중약의 건의로 개경에 도교 사원 복원궁을 세웠다(→ 예종 (고려)). 강화 마니산 참성단에서도 초제를 지냈다(→ 강화 참성단).
  • 조선 - 소격전(1466년 소격서로 개칭)이 초제를 맡았다. 사림은 제후국이 하늘에 제사하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고 도교는 이단이라며 반대했고, 1518년(중종 13) 조광조 등의 주장으로 소격서를 없앴다. 마니산 참성단의 초제는 그 뒤에도 이어졌다.[1]

다른 사상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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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핵심 관련 사실
도교 신선 사상, 불로장생, 초제 연개소문의 도교 장려, 복원궁, 소격서
불교 선종 참선을 통한 깨달음 9산 선문 (→ 한국의 선종)
유교 오경, 충·효·예 태학, 국학, 국자감, 성균관
풍수지리설 땅의 기운과 국운 도선, 서경 길지설 (→ 묘청의 난)
동학 인내천, 시천주 최제우 (→ 동학)
  1. ↑ 1.0 1.1 도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2. ↑ 『삼국사기』 권21 고구려본기 보장왕 2년 3월, 연개소문의 요청으로 당에 도교를 요청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