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동학(東學)은 1860년 경주의 몰락 양반 최제우가 서학(천주교)에 맞서 세운 민족 종교로,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신다는 시천주 사상을 내세웠으며 1905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동학의 경전 『동경대전』(1907년판)

19세기 세도 정치 아래 삼정의 문란과 민란, 전염병이 겹치고 서양 배(이양선)가 나타나 사회 불안이 깊어졌다. 경주 출신 최제우(1824~1864)는 1860년 음력 4월 15일(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용담유사』의 구절은 4월 5일)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는 종교 체험을 했다고 밝히고, 서양의 학문인 서학에 대해 '동쪽의 학문'인 동학을 내세웠다. 1861년부터 포교하자 반년 만에 3천 명가량이 입도할 만큼 경상도 일대에 빠르게 퍼졌다.[1]

  • 시천주(侍天主) - 사람마다 몸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신분과 남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를 부정하는 평등 사상이었다.
  • 보국안민·광제창생 -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널리 세상 사람을 구한다는 사회 구제를 목표로 삼았다. 서양 세력을 나라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아 척사의 성격도 지녔다.
  • 사상 요소 - 유교·불교·도교를 아우르고 주문과 부적 같은 민간 신앙 요소를 받아들였다. 13자·21자 주문을 외우게 했다.
  • 이후의 발전 - 2대 교주 최시형은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사인여천)고 가르쳤고, 3대 교주 손병희는 천도교를 선포한 뒤 '사람이 곧 한울'(인내천)을 종지로 삼았다. 인내천이라는 말은 최제우·최시형의 글에는 보이지 않는다.[2]
  • 경전 - 한문 경전 『동경대전』과 한글 가사체 『용담유사』가 있다. 최시형이 1880년 인제, 1881년 단양에서 펴냈다.
  • 접주제·포접제 - 최제우는 1862년 12월 경주·영덕·영해·대구 등 각지에 접소를 두고 지방 유력자를 접주로 임명했다. 최시형 때 교세가 삼남과 강원도로 퍼지자 여러 접을 지역 단위의 포로 묶고 대접주가 그 아래 접주를 거느리게 했다. 1884년에는 포에 교장·교수·도집·집강·대정·중정의 6임을 두었다. 이 포접 조직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때 농민군의 부대 편제로 그대로 쓰였다.[2]
  • 탄압 - 조정은 동학을 서학처럼 백성을 현혹하는 종교로 보아 금했다. 최제우는 1863년 12월 붙잡혀 이듬해 3월 대구 감영에서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되었다.
  • 교조 신원 운동(1892~1893) -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포교의 자유를 얻으려고 삼례 집회, 서울 복합 상소, 보은 집회를 열었다. 보은 집회에서는 '척왜양창의'를 내걸었다.
  • 동학 농민 운동(1894) - 전봉준 등 남접이 고부에서 봉기한 뒤 반봉건·반외세 운동으로 번졌다.
  • 천도교(1905) -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고쳐 부르고 근대 종교로 정비했다.

개항기·일제 강점기 종교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종교 관련 사실
동학 최제우 창시, 시천주, 포접제로 교세 확장, 교조 신원 운동
천도교 동학을 계승, 『만세보』, 『개벽』·『어린이』 (→ 천도교)
개신교 아펜젤러가 배재 학당 설립 (→ 배재 학당)
원불교 박중빈 창시, 새 생활 운동
불교 한용운 등이 사찰령 폐지 운동
천주교 의민단 조직, 무장 투쟁
  1. ↑ 동학의 창도 과정, 『신편 한국사』 37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2.0 2.1 동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