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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법(賑貸法)은 194년 고구려 고국천왕이 국상 을파소의 건의를 받아들여 봄에 나라의 곡식을 백성에게 빌려주고 가을 추수 뒤에 갚게 한 빈민 구제 제도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국천왕은 사냥을 나갔다가 길에서 우는 사람을 만났다. 품을 팔아 어머니를 모시는데 흉년이 들어 품을 팔 곳이 없어 운다는 말을 듣고, 왕은 옷과 먹을 것을 내려 위로한 뒤 관리에게 명해 해마다 3월부터 7월까지 관청의 곡식을 집안 식구 수에 따라 차등 있게 빌려주고 10월에 갚게 했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데에는 신분보다 능력을 보아 재상에 오른 국상 을파소의 역할이 컸다.[1]

  • 농민 몰락 방지 - 춘궁기에 굶주린 농민이 귀족의 고리대에 빠져 노비가 되는 것을 막았다. 농민은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는 나라의 기반이었으므로, 진대법은 국가 재정과 군사력을 지키는 정책이기도 했다.
  • 귀족 견제 - 귀족의 고리대와 토지 겸병을 견제해 왕권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 고국천왕의 개혁 - 고국천왕은 부족적 성격의 5부를 행정 구역인 5부(동·서·남·북·중부)로 바꾸고, 왕위의 부자 상속을 확립하는 등 왕권을 강화했다. 진대법도 이 흐름 속에서 실시되었다.

후대의 빈민 구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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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법의 정신은 뒤의 왕조로 이어졌다.

  • 흑창 - 고려 태조가 둔 빈민 구제 기관.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거두었다.
  • 의창 - 고려 성종이 흑창을 고쳐 만든 것이다. 조선에도 이어졌다.
  • 상평창 - 고려 성종 때 개경·서경과 12목에 설치해 곡식값을 조절했다.
  • 제위보 - 고려 광종 때 기금을 마련해 그 이자로 빈민을 구제했다.
  • 환곡 - 조선의 의창·상평창이 곡식을 빌려주던 제도로, 조선 후기에는 고리대로 변해 삼정의 문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사창제 - 흥선 대원군이 환곡의 폐단을 고치려고 마을 단위로 운영하게 했다.

고대 국가의 다른 제도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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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라·제도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함(194) 고구려 고국천왕 진대법
1책 12법, 부경이라는 창고 고구려·부여 (→ 한반도의 초기 국가)
정사암에서 재상을 뽑음 백제 (→ 삼국의 귀족 회의)
골품에 따라 관등 승진을 제한함 신라 (→ 골품제)
동시전을 두어 시장을 감독함 신라 (→ 동시전)
인안·대흥 등 독자 연호 발해
  1. ↑ 진대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