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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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문신으로, 호는 사계이며, 송익필·이이에게 배우고 『가례집람』·『상례비요』·『의례문해』 등을 지어 조선 예학의 기틀을 세웠다.

젊어서 송익필에게 예학을, 이이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천거로 벼슬길에 나서 여러 고을 수령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는 명군의 군량 조달에 공을 세웠다. 광해군 때 북인이 권력을 잡자 벼슬을 버리고 충청도 연산(지금의 논산)에 물러나 학문과 교육에 힘썼다. 인조반정(1623)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일흔 다섯의 나이로 조정에 나가 원자의 교육을 맡았고,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를 맞이하거나 의병을 모아 세자를 지켰다. 과거 출신이 아니어서 높은 관직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인조 초 서인의 영수로 큰 영향력을 지녔다.[1]
- 『가례집람』 - 주자의 『가례』를 완성되지 않은 책으로 보고, 여러 학설을 모아 조목마다 풀이하고 보충했다. 조선의 현실에 맞는 예론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 『상례비요』 - 상례 절차를 정리한 책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583년 김장생의 첫 저술로 적고, 『한국문화사』는 신의경이 처음 엮고 김장생·김집 부자가 보완했다고 적는다.[1][2]
- 『의례문해』 - 제자·벗과 예에 관해 묻고 답한 것을 아들 김집이 엮었다. 경전에 나오지 않는 변칙적 경우(변례)를 주로 다루었다.
- 이 밖에 『전례문답』·『근사록석의』·『경서변의』를 지었고, 이이가 시작한 『소학집주』를 1601년 완성했다. 글은 『사계선생전서』에 모였다.
김장생과 아들 김집의 예학은 17세기 조선 예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영남의 정구와 함께 당대 예학의 쌍벽으로 꼽혔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