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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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戊午士禍, 1498)는 조선 연산군 4년 『성종실록』을 편찬하던 중 김일손이 사초에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은 것이 문제가 되어, 유자광·이극돈 등 훈구 세력이 김종직 문하의 사림을 죽이거나 귀양 보낸 사건이다.

1498년 『성종실록』 편찬을 위해 실록청이 열리고 이극돈이 당상관이 되었다. 이극돈은 김일손의 사초에서 「조의제문」을 찾아내 유자광에게 알렸고, 유자광은 노사신·윤필상 등과 함께 김종직이 세조를 비방한 대역부도의 죄를 지었다고 연산군에게 아뢰었다. 7월 17일 연산군은 "김종직이 제자들과 함께 세조의 덕을 헐뜯고 김일손이 역사에 거짓을 쓰게 했다"며 형벌을 논의하게 했다.[2]
- 이미 죽은 김종직은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베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 김일손·권오복·권경유·이목·허반 등은 사형되었다.
- 정여창·김굉필 등은 곤장을 맞고 먼 곳으로 귀양 갔다.
- 사림은 크게 꺾였고, 연산군은 이를 계기로 대간의 간언을 더욱 꺼리게 되었다. 1504년에는 폐비 윤씨 사건을 빌미로 갑자사화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