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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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閔泳煥, 1861~1905)은 대한 제국의 관료로, 러시아와 유럽을 다녀와 근대 개혁을 주장했고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맺어지자 2천만 동포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해 항거했다.
- 러시아 대관식 - 1896년 아관파천 뒤 특명 전권 공사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다. 윤치호 등을 데리고 일본·캐나다·미국·영국·유럽을 거쳐 모스크바에 갔다가 시베리아를 건너 돌아왔다. 이 여정을 적은 기록이 『해천추범』이다.
- 유럽 6개국 공사 - 1897년 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 6개국 특명 전권 공사가 되어 영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 개혁 건의 - 돌아와 서양 제도를 본받아 민권을 넓히고 군제를 고치자고 건의했다. 그 가운데 군제 개편안이 받아들여져 원수부가 설치되었다(광무개혁).
- 독립 협회 후원 - 독립 협회의 취지에 찬동해 적극 후원했고, 독립 협회 쪽은 민영환을 백성이 믿을 만한 대신으로 꼽았다.
- 수민원 총재 - 1902년 해외 이민을 맡은 수민원의 총재가 되었다(하와이 한인 이민).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조병세와 함께 백관을 이끌고 을사오적의 처형과 조약 파기를 요구하는 상소를 거듭 올렸다. 일본 헌병에게 쫓겨나고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11월 30일 새벽 자결했다. 공훈전자사료관은 국민에게 남긴 유서 「경고 대한 2천만 동포 유서」를 소개하는데, 동포들에게 학문에 힘쓰고 한마음으로 자유 독립을 되찾으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국민, 서울 주재 외국 사절, 황제에게 남긴 세 통의 유서가 나왔다고 적는다.[2] 그의 순국이 알려지자 조병세·홍만식 등 관료와 군인, 인력거꾼까지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1962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