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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 정치(勢道政治)는 19세기 조선의 순조·헌종·철종 3대 60여 년 동안 왕실과 혼인한 소수의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해 나라를 운영한 정치 형태이다.

정조가 죽은 뒤 어린 왕이 잇달아 즉위하면서 왕권이 약해졌고, 탕평 정치로 억눌렸던 붕당 간 대립 대신 몇몇 권세 가문이 정치를 이끌었다. 본래 '세도'는 세상을 바른 길로 이끄는 도리라는 뜻이었으나, 이 시기의 정치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지면서 권세를 쥔 사람의 정치라는 뜻이 되었다.[1]

  • 순조 초(1800~1803) - 영조의 계비 정순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며 친정 경주 김씨와 벽파가 정국을 쥐었다. 정조가 세운 장용영은 1802년 혁파되었다.
  • 안동 김씨(순조·철종 때) - 1802년 딸을 순조의 왕비로 들인 김조순과 그 일족이 요직을 차지했다. 철종의 왕비도 안동 김씨에서 나왔다.
  • 풍양 조씨(헌종 때) - 헌종의 외할아버지 조만영 집안이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2]
  • 1863년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끝났다.
  • 권력 기구 - 의정부와 6조보다 비변사가 국정 전반을 맡았고, 세도 가문이 비변사의 핵심 자리를 차지했다.
  • 정치 참여의 축소 -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소수 가문으로 좁아져 남인·소론, 서북 지방 사람, 서얼의 관직 진출이 막혔다. 과거제가 흐트러지고 매관매직이 퍼졌다.
  • 삼정의 문란 - 벼슬을 돈으로 산 수령과 향리가 전정·군정·환곡을 통해 농민을 수탈했다. 정부는 이를 수령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근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1]
  • 저항 - 서북 지방 차별에 맞선 홍경래의 난(1811), 진주에서 시작된 임술 농민 봉기(1862)가 일어났다. 정부는 1862년 삼정이정청을 두었으나 곧 없앴다.
  • 새로운 사상 - 『정감록』 같은 예언 사상이 퍼지고, 천주교가 확산했으며, 1860년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했다.

붕당 정치·탕평 정치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정치 형태 시기 특징
붕당 정치 선조~현종 서인·남인 등이 서로 견제하며 공존, 예송
환국 숙종 집권 붕당을 한꺼번에 교체 (→ 환국)
탕평 정치 영조·정조 붕당을 고르게 등용 (→ 영조, 정조 (조선))
세도 정치 순조·헌종·철종 외척 가문의 권력 독점, 비변사 중심, 삼정의 문란
  1. ↑ 1.0 1.1 세도정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왕권의 약화와 붕당의 퇴조, 『신편 한국사』 32 조선 후기의 정치,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