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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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 1945)는 광복 직후 여운형과 안재홍이 조선 총독부로부터 치안 유지를 넘겨받아 조직한 건국 준비 단체로, 전국에 지부와 치안대를 두었다가 1945년 9월 조선 인민 공화국을 선포하고 해체되었다. 줄여서 건준이라 한다.

일본의 항복이 다가오자 조선 총독부는 일본인의 안전한 귀국과 치안 유지를 맡길 한국인 지도자를 찾았다. 1945년 8월 15일 아침 여운형은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을 만나 정치범·경제범의 즉시 석방, 3개월 치 식량 확보, 치안 유지와 건국 활동에 대한 간섭 금지, 학생 훈련과 청년 조직에 대한 간섭 금지, 노동자·농민 조직에 대한 간섭 금지의 다섯 가지 조건을 내걸고 이를 받아들이게 했다. 여운형은 그날 바로 건준을 발족시켰고, 이튿날인 8월 16일 서울 휘문중학교 운동장에서 군중에게 협상 경과를 알리는 연설을 했다. 뿌리는 여운형이 1944년에 만든 비밀 결사 조선 건국 동맹이었다.[1]
- 중앙 조직 - 8월 17일 위원장 여운형, 부위원장 안재홍 아래 총무·재무·조직·선전·무경(武警)의 5부를 두었다. 8월 22일 2차 개편 때 위원이 33명으로 늘었다.
- 치안대와 지부 - 무경부 아래 치안대를 두어 질서를 지켰고, 8월 말까지 전국 조직을 갖춘다는 목표 아래 각 지방에 위원회(지부)를 만들었다. 지부는 임시 자치 기관의 성격을 띠었다.
- 강령 - 9월 2일 완전한 독립 국가 건설, 전 민족의 기본 요구를 실현할 민주주의 정권 수립, 과도기의 자주적 질서 유지를 내건 3개 항의 강령을 발표했다.[2]
송진우·김성수 등 민족주의 우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받들어야 한다며 건준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은 1945년 9월 한국 민주당을 만들었다. 건준 안에서는 박헌영의 조선 공산당 계열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고, 안재홍 등 중도 우파는 떨어져 나갔다. 미군이 들어오기 직전인 9월 6일 건준은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를 열어 조선 인민 공화국(인공) 수립을 선포했고, 건준은 9월 7일 해체되었다. 인공은 주석에 이승만, 부주석에 여운형을 올렸으나 이승만은 취임을 거부했고, 미 군정은 10월 10일 인공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1] 여운형은 인공 대신 건준을 유지하는 편이 미군과의 관계에서 낫다며 해체에 반대했다고 전하며, 11월 조선 인민당을 만들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