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서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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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서민 문화는 17~19세기 농업과 상업의 발달로 형편이 나아진 상민·중인이 문화의 새 주인으로 나서면서 꽃핀 한글 소설·사설시조·판소리·탈춤·민화·위항 문학 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 한글 소설 -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장화홍련전』 등이 널리 읽혔다.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신분 차별과 사회 모순을 비판하고 서민의 감정을 담았다.
- 세책점 - 서울 번화가에 베껴 쓴 소설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세책점(세책가)이 성업했다. 빌린 사람들이 남긴 낙서가 세책본에 그대로 남아 있다. 상업 출판업자는 목판으로 찍은 방각본 소설을 팔았다.[2]
- 전기수 - 거리에서 소설을 읽어 주고 돈을 받던 직업 낭독가이다. 조수삼의 『추재집』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 밖에 살던 전기수는 날마다 자리를 옮겨 다리 밑·배오개·종루 앞 등에서 「숙향전」·「심청전」 등을 읽었다. 중요한 대목에서 멈추었다가 사람들이 돈을 던지면 다시 이어 갔다고 한다.[3]
- 사설시조 - 평시조보다 길고 형식이 자유로워 남녀의 사랑, 고된 살림, 양반과 하급 관리의 허세를 거침없이 담았다.
- 위항 문학과 시사 - 서리·역관 같은 중인과 아전 등 위항인도 시인 모임인 시사(詩社)를 만들어 활동했다. 1786년(정조 10) 천수경을 중심으로 인왕산 아래 송석원에서 모인 송석원시사(옥계시사)가 대표적이며, 장혼·조수삼 등이 참여해 해마다 두 번 전국 규모의 시회(백전)를 열었다. 『소대풍요』(1737)에 이어 1797년 『풍요속선』을 내는 등 60년마다 위항인의 시집을 펴냈다.[4]
- 판소리 - 소리꾼 한 사람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창과 아니리로 긴 이야기를 펼친다. 양반층까지 즐겼고, 19세기 신재효가 사설을 정리했다. 지금은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 마당이 전한다.
- 탈춤과 산대놀이 - 탈을 쓰고 춤·노래·재담으로 양반과 파계승을 풍자했다. 장시가 서고 상인이 모이는 곳에서 공연되었다. 18세기 서울 상업이 커지자 사상 도고가 자리 잡은 양주·송파 같은 상업 거점에서 별산대놀이가 자랐다. 송파 산대놀이는 전국 15대 향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 송파장을 무대로 성행했고, 지금 국가무형유산으로 전승된다.[5] 이 밖에 하회 별신굿 탈놀이, 황해도의 봉산 탈춤, 경상남도 고성의 고성 오광대, 부산 수영의 수영 야류 등이 이름났다.
| 모습 | 시기 |
|---|---|
| 세책점에서 한글 소설을 빌림, 전기수의 낭독 | 조선 후기 |
| 까치·호랑이를 그린 민화 | 조선 후기 |
| 서리·중인의 시사 활동 | 조선 후기 |
| 송파장의 산대놀이 공연 | 조선 후기 |
| 쓰시마 도주와 계해약조 체결 | 조선 전기 1443년 (→ 계해약조) |
| 『삼강행실도』 간행 | 조선 전기 세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