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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곡(還穀)은 조선에서 나라가 봄철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 추수 뒤에 거두어들이던 구휼 제도로, 조선 후기에는 이자를 받아 관청 재정을 메우는 세금처럼 변해 19세기 세도 정치기에 삼정의 문란 가운데 가장 큰 폐단이 되었다.

조선은 고려의 의창과 상평창 제도를 이어받아 곡식을 빌려주고 거두는 환곡을 운영했다. 환곡은 평소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비축 곡식이었고, 흉년에는 굶주린 백성을 살리는 진휼 곡식이었다. 오래 쌓아 둔 묵은 곡식을 새 곡식으로 바꾸는 목적도 겸했다.[1]

  • 모곡(耗穀) - 곡식을 보관하는 동안 쥐가 먹거나 썩어 줄어드는 몫을 메운다며 빌려준 곡식의 10%를 더 받았다.
  • 재정 수단화 - 17세기 전반 모곡의 10%(뒤에는 더 많은 몫)를 관청 경비로 쓰는 규정이 생기면서, 환곡은 중앙과 지방 관청의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정부가 재정을 환곡 이자에 기대면서 빌려주는 곡식의 양이 계속 늘었고, 환곡은 구휼보다 세금에 가까워졌다.[1]
  • 강제 대여와 부정 - 필요 없는 집에도 억지로 빌려주는 늑대(勒貸), 겨나 모래를 섞어 빌려주는 일, 장부만 꾸미고 곡식은 없는 허류(虛留), 이자를 불려 받는 일 등 수령과 아전의 부정이 잇따랐다.[2]
  • 삼정의 문란 - 19세기 세도 정치 아래 전정(토지세)·군정(군포)·환곡의 세 수취 제도가 모두 어지러워졌는데, 그 가운데 환곡의 폐단이 가장 심했다. 이는 1862년 임술 농민 봉기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 삼정이정청(1862) - 임술 농민 봉기 뒤 정부는 삼정이정청을 두어 환곡을 없애고 토지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내놓았으나, 곧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 사창제(1867) - 흥선 대원군은 환곡을 면·리 단위의 주민이 스스로 운영하는 사창제로 바꾸어 아전의 농간을 막으려 했다.
  • 폐지 - 갑오개혁 때인 1895년 사환조례를 만들어 환곡을 사창 방식의 사환으로 바꾸면서, 관청이 이자를 거두던 환곡은 사라졌다.

시대별 빈민 구제 제도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제도 나라·시기 내용
진대법 고구려 고국천왕(194)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10월에 갚게 함
의창 고려 성종(986) 태조의 흑창을 넓혀 세움
제위보 고려 광종(963) 기금의 이자로 빈민 구제
환곡 조선 봄에 빌려주고 가을에 거둠, 후기에 수탈 수단으로 변질
사창제 조선 고종(1867) 흥선 대원군의 환곡 개혁
  1. ↑ 1.0 1.1 환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
  2. ↑ 환곡제 운영, 『신편 한국사』 32,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