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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 위기는 1997년 말 대한민국이 외화 유동성이 바닥나 국가 부도 직전에 몰리자 국제 통화 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고, 그 관리 아래 대규모 구조 조정을 거친 경제 위기이다. 흔히 'IMF 외환 위기', 'IMF 사태'라고 부른다.

1990년대 한국은 연평균 7%대의 성장을 이어 갔으나 경상 수지 적자가 계속되었고, 금융 기관은 짧은 만기의 외화를 빌려 기업에 길게 빌려주었다. 1997년 1월 한보 그룹의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진로·대농·기아 등 대기업이 잇따라 무너지자 한국 경제에 대한 대외 신인도가 떨어졌다.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시작된 아시아 외환 위기가 번지면서 외국 자본이 빠르게 빠져나갔고, 정부는 환율을 지키려고 외환을 쏟아부었으나 외화 보유액이 바닥났다.[1]

  • 요청 -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1월 IMF에 긴급 구제 금융을 요청하기로 했고, 11월 21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
  • 의향서(1997.12.3.) - 임창열 경제 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캉드쉬 IMF 총재와 의향서에 서명했다. 긴축 재정, 고금리, 부실 금융 기관 정리, 자본 시장 개방 확대 등이 조건이었다. 12월 5일 IMF 이사회가 대기성 차관을 승인해 첫 자금이 들어왔다.[2]
  • 규모 - 백과사전은 IMF 195억 달러, 세계은행 70억 달러, 아시아 개발 은행 37억 달러를 지원받았다고 적고, 우리역사넷 해설은 각국 지원을 더한 전체 규모를 583억 5,000만 달러로 적는다.[1][2]
  • 구조 조정 -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금융 기관 퇴출과 합병, 대기업의 빅딜과 부채 비율 축소, 공기업 민영화, 외국 자본 개방을 밀어붙였다.
  • 노사정 위원회 - 1998년 1월 노동자·사용자·정부 대표가 모여 2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 협약」을 맺었고, 이 과정에서 정리 해고제가 도입되었다.
  • 금 모으기 운동 - 1998년 1~4월 국민이 금붙이를 내놓아 외화 마련을 도왔다.
  • 조기 상환 - 1999년 9월 단기 고금리 차입금을 먼저 갚고, 2001년 8월 23일 마지막 1억 4,000만 달러를 갚아 IMF 차입금 195억 달러를 모두 상환했다. 구제 금융을 신청한 지 3년 8개월 만이며, 예정(2004년 5월)보다 3년 가까이 앞당긴 것이다.[1]

기업 도산과 정리 해고로 실업자가 크게 늘었고, 비정규직이 늘어 고용이 불안해졌다. 소득 격차가 벌어지자 정부는 1999년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을 만들어 사회 안전망을 넓혔다.

정부별 경제 상황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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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부
경제기획원 발족(1961),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5·16 군정·박정희 정부 (→ 경제기획원)
제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77~1981) 박정희 정부 (→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1986~1988) 전두환 정부
금융 실명제(1993), OECD 가입(1996), IMF 구제 금융 요청(1997) 김영삼 정부
노사정 위원회(1998), IMF 차입금 조기 상환(2001) 김대중 정부
한미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2007) 노무현 정부
  1. ↑ 1.0 1.1 1.2 외환위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2. ↑ 2.0 2.1 한국과 국제 통화 기금(IMF) 간의 차관 제공 합의 의향서, 우리역사넷(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