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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중앙 정치 기구는 고려가 성종 때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이고 송의 제도와 고려 고유의 회의 기구를 더해 갖춘 중앙 관제로, 2성 6부·중추원·어사대·삼사와 도병마사·식목도감으로 이루어졌다.

태조는 태봉의 제도를 이어 광평성·내봉성 등을 두었다. 성종은 982년(성종 1) 내사문하성과 어사도성·어사 6관을 두어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이고, 991년(성종 10)에는 송의 추밀원을 본떠 중추원을 세웠다. 이후 관청 이름이 몇 차례 바뀌었고, 현종 때를 거쳐 문종 때 관원의 수와 품계가 정해졌다.[1] 당의 제도를 본뜨면서도 중서성과 문하성을 하나로 합쳤고,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나랏일을 의논하는 독자적인 합좌 기구를 두어 귀족 정치의 성격을 드러냈다.

  • 중서문하성 - 국정을 총괄한 최고 관청이다. 처음 내사문하성이라 했다가 1061년(문종 15) 중서문하성으로 고쳤다. 2품 이상의 재신은 정책을 심의했고, 3품 이하의 낭사(간관)는 간쟁과 봉박을 맡았다. 장관인 문하시중이 수상이었다.[2]
  • 상서성 - 6부를 거느리고 정책을 집행했다. 태봉의 광평성을 이어받아 어사도성(982), 상서도성(995)으로 고쳤다.[3]
  • 6부 - 이부·병부·호부·형부·예부·공부. 각 부의 장관은 상서(정3품)였고 실무를 나누어 맡았다.
  • 중추원 - 2품의 추밀이 군사 기밀을, 3품의 승선이 왕명 출납을 맡았다.
  • 어사대 - 시정을 논하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탄핵했다.
  • 삼사 - 나라 안팎의 돈과 곡식의 출납·회계만 맡았다.
  • 도병마사 - 재추가 모여 국방과 군사 문제를 의논한 회의 기구. 원 간섭기에 도평의사사(도당)로 바뀌어 최고 정무 기관이 되었다.
  • 식목도감 - 재추가 모여 법과 제도, 격식을 의논한 회의 기구.
  • 재추 -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을 아울러 '재추' 또는 '양부'라 했다. 이들이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에 모여 중요한 일을 정한 것이 고려 정치의 특징이다.
  • 대간 - 어사대의 대관과 중서문하성 낭사의 간관을 함께 '대간'이라 했다. 대간은 왕의 잘못을 말하는 간쟁, 잘못된 왕명을 되돌려 보내는 봉박, 관리 임명과 법령 제정에 동의하는 서경을 맡아 왕권과 권력자를 견제했다. 대관과 간관은 품계가 3품 이하여서 재상 관청에는 들지 못했다.[4]

다른 나라의 중앙 관제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나라·기구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의 2성, 재신과 낭사 고려 중서문하성
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 고려 중추원
화폐와 곡식의 출납 회계 고려 삼사
재추가 모여 국방·군사 문제를 논의 고려 도병마사
정당성의 대내상이 국정 총괄, 좌사정·우사정이 6부를 나누어 관할 발해 3성 6부
사헌부·사간원·홍문관, 5품 이하 관리의 서경 조선의 삼사
의정부와 6조, 승정원이 왕명 출납 조선
  1. ↑ 4) 중추원, 『신편 한국사』 13,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2. ↑ 『고려사』 권76 지30 백관1, 문하부,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3. ↑ 『고려사』 권76 지30 백관1, 상서성,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4. ↑ (2) 어사대와 낭사의 조직, 『신편 한국사』 13,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