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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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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1938~1940)은 중일 전쟁 뒤인 1938년 조선 총독부의 주도로 만들어져, 10호 단위의 애국반까지 조직을 뻗어 한국인을 감시하고 전쟁에 동원한 관제 단체이다.

일본은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뒤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을 벌였고, 이 운동이 조선에도 이어지면서 중앙 조직으로 이 연맹이 생겼다. 1938년 6월 사회 교화 단체 대표들이 총독부의 권유에 따라 '자발적인 총후 봉사'를 내세워 발기했고, 중일 전쟁 1주년인 7월 7일 경성 운동장에서 총독 미나미 지로, 조선군 사령관 고이소 구니아키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발회식을 열었다. 발기에는 59개 단체와 개인 56명이 참여했고, 식장에는 700여 단체 3만여 명이 동원되었다.[1]

조직과 애국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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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연맹 - 도·부·군·도(島)에서 읍·면, 정(町)·리까지 차례로 연맹을 두어 민족 말살 통치의 정책을 아래로 내려보냈다.
  • 애국반 - 맨 아래 단위로, 마을의 이웃 열 가구(10호)를 하나로 묶었다. 직장·단체 연맹에서는 사정에 따라 따로 반을 꾸렸다. 총독부는 애국반을 통해 지시를 전하고 주민을 감시·동원했다.[2]
  • 실천 강령 - 황국 정신 현양, 내선일체 완성, 비상시 국민 생활 혁신, 전시 경제 정책 협력, 근로 보국, 방공·방첩 등을 내걸었다.

황국 신민 서사 보급, 지원병 권유, 창씨개명 독려, 공출과 헌금 독려, 폐품 수집, 일본어 강습회 등 전시 동원의 거의 모든 일을 맡았다. 기관지 『총동원』과 선전 책자 『애국반』 등을 펴내 동네마다 돌렸다.[1]

국민 총력 조선 연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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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0월 '국민 총력 운동'으로 전환하면서 국민 총력 조선 연맹으로 개편되었다. 애국반은 이후에도 국민 총력 운동의 말단 하부 조직으로 쓰였다.[2]

일제의 다른 시기 정책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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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기
애국반 조직, 금속류 회수, 국가 총동원법 시행(1938) 민족 말살 통치기
경복궁에서 조선 물산 공진회 개최(1915), 제1차 조선 교육령(1911) 무단 통치기
신문지법 제정(1907), 메가타의 화폐 정리 사업(1905) 대한 제국 시기
  1. ↑ 1.0 1.1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애국반, 우리역사넷(교과서 용어 해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