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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유적지구(百濟歷史遺蹟地區)는 백제가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에 도읍했던 475~660년의 유적 8곳을 묶은 세계 유산으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 올랐다.

공주 공산성의 서문 금서루

충청남도 공주·부여와 전라북도(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에 흩어진 유적이다. 처음에는 공주·부여 유적과 익산 유적이 따로 잠정 목록에 올라 있었으나 하나로 묶어 신청했고, 2015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 유산 위원회에서 등재가 결정되었다. 유네스코는 이 유적들이 한국·중국·일본 고대 왕국 사이에 건축 기술과 불교가 오간 교류를 보여 주고(기준 ii), 백제 특유의 문화·종교·예술을 증언한다(기준 iii)고 평가했다.[1]

  • 공주(웅진 시기, 475~538)
    • 공산성 - 금강 남쪽 기슭의 웅진 도성 산성이다.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옛 송산리 고분군) - 무령왕릉을 비롯한 웅진 시기 왕릉군이다.
  • 부여(사비 시기, 538~660) - 성왕이 538년 옮긴 도읍이다.
    • 관북리 유적 - 사비 왕궁 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연못, 남북·동서로 교차하는 도로와 배수로, 기와 건물 터, 목간 등이 나와 계획에 따라 도성을 정비했음을 보여 준다.[2]
    • 부소산성 - 왕궁 뒤 부소산에 쌓은 방어성이자 왕궁의 후원이다.
    • 정림사지 - 사비 도성 한가운데의 절터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이 남아 있다.
    • 부여 왕릉원(옛 능산리 고분군) - 사비 시기 왕릉군이다. 1호분(동하총)의 돌방 네 벽에는 사신도가, 천장에는 연꽃과 구름무늬가 그려져 있다. 옆의 절터에서 백제 금동 대향로가 나왔다.
    • 나성 - 사비 도성의 북쪽과 동쪽을 감싼 외곽 성이다. 서쪽과 남쪽은 성벽 대신 금강을 자연 방어선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부소산성과 함께 천도를 앞두고 가장 먼저 계획해 쌓은 시설로 평가되며, 성 안은 왕궁·사찰·주거 구역, 성 밖은 왕릉 같은 죽은 이의 공간으로 나누었다.[3]
  • 익산(사비 시기의 별도)
    • 왕궁리 유적 - 무왕 때 조성한 왕궁 터이다. 관북리와 같은 '수부(首府)' 글자 기와가 나왔다.[2]
    • 미륵사지 - 무왕 때 세운 큰 절의 터로, 미륵사지 석탑이 남아 있다.

엇갈리는 이름

편집 원본 편집

유네스코 등재 문서는 등재 당시 이름인 '송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을 쓴다.[1] 국내에서는 2021년 이 두 곳의 이름을 각각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왕릉원'으로 바꾸었다.

부여·공주에서 일어난 일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건 장소
성왕이 새 도읍으로 정함(538) 사비(부여)
문주왕이 한성 함락 뒤 옮긴 도읍(475) 웅진(공주)
백제 부흥 운동, 흑치상지의 거병 임존성(예산) (→ 백제 부흥 운동)
윤충이 의자왕의 명으로 함락시킴(642) 대야성(합천) (→ 대야성 전투)
비담과 염종의 반란(647) 명활성(경주) (→ 비담의 난)
신립의 배수진(1592) 탄금대(충주) (→ 탄금대 전투)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지음 흑산도 (→ 자산어보)
  1. ↑ 1.0 1.1 Baekje Historic Areas,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2026-10-19 확인.
  2. ↑ 2.0 2.1 부여 관북리 유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3. ↑ 부여나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