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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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학교(五山學校)는 1907년 12월 이승훈이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오산에 세운 중등 교육 기관으로, 신민회의 민족 교육 운동을 대표하는 학교이다.
- 성장(1908~1909) - 1908년 강명의숙을 오산 소학교로 고쳐 함께 두었고, 1909년 8월 오산 중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민족 교육에 힘썼다.
- 105인 사건(1911) - 이승훈은 안악 사건으로 붙잡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05인 사건으로 다시 끌려가 옥고를 치렀다.[2]
- 3.1 운동과 폐교(1919) - 이승훈은 기독교 대표로 민족 대표 33인에 들었고, 오산의 학생·졸업생·주민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일제는 보복으로 교사(학교 건물)를 불태우고 학교를 닫게 했다. 1920년 9월 다시 문을 열었으며, 이 무렵 염상섭·김억 등이 교사로 있었다.
- 오산 고등 보통학교(1926) - 1926년 11월 5년제 고등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교장 조만식이 정직·근면·질소를 강조하는 교훈을 정했다. 1930년 졸업생들이 교정에 이승훈의 동상을 세웠고, 이승훈은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유해를 학생들을 위한 표본으로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 광복 뒤 - 공산 정권의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1953년 부산에서 다시 세웠고, 1956년부터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자리 잡았다(오산 고등학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