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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소년회(天道敎少年會)는 1921년 김기전·방정환 등이 천도교 청년회 안의 소년부를 넓혀 만든 소년 운동 단체로, 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의 날'을 정해 우리나라 소년 운동을 열었다.

3.1 운동 뒤 천도교는 청년회를 중심으로 문화 운동을 넓혔다. 천도교 청년회는 1921년 4월 소년부를 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해 5월 천도교 소년회가 출범했다. 천도교 청년회 간부 김기전과,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사위 방정환이 중심이 되었다. 어린이를 어른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고, 정서를 기르며 사회생활을 익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1]

  • 첫 '어린이의 날'(1922) - 창립 1주년인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선포했다. 소년 회원들이 서울 거리마다 늘어서서 "항상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라고 쓴 인쇄물을 나눠 주며 취지를 알렸다. 『동아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이것을 "조선 소년 운동의 처음"이라고 했다.[2]
  • 조선 소년 운동 협회(1923) - 1923년 천도교 소년회를 비롯한 서울의 여러 소년 단체가 조선 소년 운동 협회를 만들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전국 규모의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뿌린 선전문은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라고 부탁했다.[2]
  • 잡지 『어린이』(1923) - 방정환이 1923년 3월 창간해 동요와 동화를 실었다.

천도교 소년회는 1923년 7월 전조선 소년 지도자 대회를 열어 소년 운동 지도자들을 묶으려 했다. 그러나 1925년 사회주의 계열이 오월회를 따로 만들어 소년 운동이 둘로 갈라졌고, 1926·1927년 어린이날 행사도 따로 치렀다. 1928년 3월 지방 소년회를 묶어 천도교 소년회 연합회로 넓히고 방정환을 대표 위원으로 뽑았으나, 1930년대 들어 일제의 탄압과 천도교 청년당의 조직 개편으로 힘을 잃었다.[1]

1920년대 단체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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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활동
천도교 소년회 김기전·방정환 주도, 1922년 '어린이의 날' 선포
조선어 학회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 제정, 조선말 큰사전 편찬
진단 학회 1934년 조직, 기관지 『진단학보』 발행
신민회 1907년 비밀 결사, 오산 학교·대성 학교 설립
찬양회 1898년 북촌 양반 여성들이 여권통문 발표
근우회 1927년 여성 운동 단체, 신간회의 자매 단체
  1. ↑ 1.0 1.1 천도교소년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2. ↑ 2.0 2.1 어린이날 제정과 천도교소년회의 규칙, 사료로 본 한국사,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동아일보』 1922년 5월 1일 「10년 후 조선을 여하라」, 『개벽』 제35호(1923년 5월 1일) 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