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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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중건(景福宮重建, 1865~1868)은 흥선 대원군이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고 임진왜란 때 불타 27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을 다시 지은 사업으로, 비용을 대려고 원납전을 거두고 당백전을 찍어 백성의 원성을 샀다.
- 원납전 - '스스로 원해서 바치는 돈'이라는 뜻이다. 4월 5일 대왕대비는 이틀 사이에 원납전이 10만 냥 모였다며 백성을 부역에 동원하지 말라고 했다.[3] 그러나 실제로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강제로 걷어 '원망하며 내는 돈(怨納錢)'이라 불렸다. 1865년 4월부터 1868년 8월까지 걷힌 원납금은 약 750만 냥이었고, 1만 냥 이상을 낸 사람에게는 수령 등 벼슬을 주었다.[1]
- 결두전 - 토지 1결마다 100문씩 새로 거두었다.
- 당백전 - 1866년 11월부터 상평통보 100배의 액면을 매긴 당백전을 찍었다. 실제 가치는 액면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아 6개월 동안 1,600만 냥이 발행되면서 물가가 크게 올랐고, 결국 발행이 중단되었다. 1867년에는 값싼 청전을 들여와 유통했다.
- 부역 동원 - 원납전을 낸 부유층은 부역을 피했지만 경기 농민들은 공사에 동원되어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기술자가 모자라자 승려 장인과 민간 장인까지 강제로 불러들였다.[1]
- ↑ 1.0 1.1 1.2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신편 한국사』 37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 ↑ 『고종실록』 2권, 고종 2년 4월 2일, 대왕대비가 경복궁을 중건할 것을 명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 ↑ 『고종실록』 2권, 고종 2년 4월 5일, 대왕대비가 경복궁을 중건하는 데 백성을 동원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명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 ↑ 경복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경복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
- ↑ 최익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