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제도
IT 위키
더 많은 작업
과거 제도(科擧制度, 958~1894)는 시험을 치러 관리를 뽑는 제도로, 고려 광종이 958년 쌍기의 건의로 처음 실시해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900여 년 동안 관리 선발의 중심이 되었다. 흔히 '과거제' 또는 '과거'라고 한다.
과거는 가문의 배경으로 관직을 주는 음서와 달리, 학문과 능력을 시험해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를 길러 왕권과 중앙 집권을 강화하는 데 알맞은 제도였다. 신라에도 788년(원성왕 4) 국학 학생을 유교 경전 이해 수준에 따라 상·중·하품으로 나누어 관리 채용에 참고한 독서삼품과가 있었으나, 골품제 때문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학 (신라)). 고려 광종은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광종 9) 처음 과거를 실시했다. 『고려사』 선거지는 이때부터 문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광종 (고려)).[1][2]
- 종류 - 문학적 재능을 보는 제술업(제술과)과 유교 경전을 보는 명경업(명경과)을 '양대업'이라 했고, 제술업을 더 중시했다. 기술관을 뽑는 잡업(의업·복업·지리업·율업·서업·산업 등)과 승려에게 승계를 주는 승과도 있었다. 무과는 공양왕 때 잠깐 설치된 것 말고는 없었다.[1]
- 절차 - 지방의 향공시(계수관시)와 국자감시를 거쳐 본시험인 예부시(동당시)를 치렀다. 제술업은 958년부터 1392년까지 250회 시행되어 6,330명이 합격했다.
- 좌주와 문생 - 시험관인 지공거와 합격자가 평생 스승과 제자 관계를 맺어 학벌을 이루었다.
- 음서와 함께 - 5품 이상 관료의 자손은 시험 없이 음서로 관직에 나아갈 수 있어, 과거만이 관직에 오르는 길은 아니었다.
- 고려 말 - 공민왕 때 성균관을 다시 세워 경학 중심으로 바꾸고, 1369년 향시·회시·전시의 3층 제도를 들였다. 신진 사대부가 과거로 대거 진출했다.[2]
- 종류 - 문과(대과)와 그 예비 단계인 생원시·진사시(소과), 무관을 뽑는 무과, 기술관을 뽑는 잡과(역과·의과·음양과·율과)가 있었다. 문과·소과·잡과는 예조가, 무과는 병조가 주관했다.
- 식년시 - 3년마다(자·묘·오·유년) 치르는 정기 시험이다. 문과는 초시 240명 → 복시 33명 → 전시(왕 앞에서 순위를 정함, 갑과 3·을과 7·병과 23)로 진행되었고, 갑과 1등을 장원이라 했다.
- 부정기 시험 -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치르는 증광시, 왕이 성균관 문묘에 참배한 뒤 치르는 알성시, 그 밖의 별시·정시·춘당대시가 있었다. 식년시와 증광시는 모든 과를, 나머지는 주로 문과와 무과만 치렀다.[2]
- 응시 자격 - 법적으로는 양인 이상이면 응시할 수 있었으나, 탐관오리의 자손, 재가한 여성의 자손, 서얼은 문과 응시가 막혔다.
- 현량과 - 1519년(중종 14) 조광조 등 사림의 건의로 덕행 있는 인재를 천거받아 간단한 시험으로 뽑은 특별 시험으로, 기묘사화로 곧 폐지되었다(→ 현량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