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청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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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천(池靑天, 1888~1957)은 일본 육군 사관 학교를 나와 만주로 망명한 뒤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쌍성보·대전자령 전투를 이끌고, 1940년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군인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 신흥 무관 학교 - 일본군의 병서와 군용 지도를 가지고 신흥 무관 학교에 들어가 교관으로 독립군 간부를 길렀고, 서로 군정서의 간부가 되었다.
- 대한 독립군단과 자유시 - 1920년 청산리 전투 뒤 일본군의 보복을 피해 서일·김좌진 등과 대한 독립군단을 꾸렸다. 1921년 자유시 참변 뒤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임시정부 등의 구명으로 풀려났다.
- 정의부 - 1925년 무렵 정의부의 군사 위원장 겸 사령관이 되었다.
- 한국 독립군 - 1930년 북만주에서 한국 독립당 창당에 참여해 군사 위원장을 맡고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중국군과 한중 연합 작전을 펼쳐 1932년 쌍성보 전투, 1933년 6월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 ↑ 1.0 1.1 지청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2.0 2.1 지청천(이달의 독립운동가), 공훈전자사료관, 국가보훈부, 2026-10-19 확인.
- ↑ 일본군과 맞서 싸운 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독립기념관』 2019년 9월호, 독립기념관,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