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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開京)은 919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의 도읍이었던 곳으로, 지금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이며 송악·개주·송도·개성이라고도 불렸다.

개성 만월대 터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도시로, 신라 말 왕건 집안의 근거지였다. 궁예가 한때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가 철원으로 옮겼고, 918년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이듬해(919) 정월 다시 송악 남쪽에 도읍을 정했다. 궁궐을 짓고 3성·6상서·9시를 두었으며, 시전을 세우고 방리를 나누어 5부로 구획했다.[1] 고려는 개경 외에 서경(평양)·동경(경주), 뒤에 남경(양주)을 두어 3경으로 삼았다. 몽골 침입 때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가(1232) 1270년 다시 돌아왔다(개경 환도). 조선은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이곳을 개성부로 삼았다.

  • 궁성과 만월대 - 송악산 남쪽 구릉에 지은 고려의 정궁 터로, 조선 시대부터 만월대라 불렀다. 정전인 회경전, 왕의 초상을 모신 경령전 터 등이 확인되었고,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남북이 함께 여덟 차례 발굴해 금속활자 등을 찾아냈다.[2]
  • 나성 - 거란의 2차 침입 때 도성이 쉽게 함락된 경험 때문에 강감찬의 건의로 시가지 전체를 두른 바깥 성을 쌓아 1029년(현종 20) 완성했다. 둘레 약 23km에 4대문·8중문·13소문을 두었다. 동원 인원을 백과사전 '개성 성곽' 항목은 역부 23만 8,938명, '나성' 항목은 30만 4,400명으로 달리 적고 있고, 공장(기술자)은 둘 다 8,450명이다.[3][4]
  • 시전과 벽란도 - 도성 안에 시전을 두고 경시서가 감독했다.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는 개경의 외항으로 송·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 고려의 경제

개경에 남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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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내용
만월대 고려 궁궐 터
고려 성균관 고려의 최고 교육 기관 국자감 자리, 조선 시대에도 향교로 쓰임 (→ 성균관)
현릉 태조 왕건과 신혜 왕후의 무덤 (→ 고려 태조)
현정릉 공민왕과 노국 대장 공주의 쌍릉 (→ 공민왕)
만부교 942년 태조가 거란이 보낸 낙타 50필을 매어 굶겨 죽인 다리
숭양 서원 정몽주의 집터에 세운 서원
선죽교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 일파에게 죽임을 당한 다리
개성 첨성대 고려의 천문 관측 시설 터

만부교 사건은 942년(태조 25) 거란이 사신과 낙타를 보내오자 태조가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며 사신 30명을 섬으로 귀양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 매어 굶겨 죽인 일로, 고려가 거란을 배척하는 정책을 상징한다.[5] 만월대, 성균관, 숭양 서원, 선죽교, 현릉, 공민왕릉, 개성 성곽, 개성 첨성대 등은 2013년 '개성 역사 유적 지구'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올랐다.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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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고려 시대의 일
개경 고려 도읍, 강감찬의 건의로 나성 축조, 만부교 사건
서경(평양) 묘청의 난, 조위총의 난, 동녕부 설치 (→ 묘청의 난, 동녕부)
강동 6주(흥화진·귀주 등) 993년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확보 (→ 강동 6주)
강화도 1232년 최우가 천도해 몽골에 항전 (→ 고려 몽골 전쟁)
진포(금강 어귀) 1380년 최무선이 화포로 왜선을 불태움 (→ 진포 대첩)
동계(동북면) 1173년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내걸고 봉기 (→ 김보당의 난)
압록강 근처 1225년 몽골 사신 저고여 피살 (→ 고려 몽골 전쟁)
  1. ↑ 『고려사』 권1 세가1 태조 2년 정월, 도읍을 정한 후 궁궐을 짓고 관아를 설치했으며 행정구역을 획정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개성 만월대 유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3. ↑ 개성 성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4. ↑ 나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5. ↑ 『고려사』 권2 세가2 태조 25년 10월, 거란과의 국교를 단절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