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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肅宗, 1054~1105, 재위 1095~1105)은 고려의 제15대 왕으로, 의천의 건의를 받아 주전도감을 두고 해동통보·은병(활구)을 만들었으며, 서적포를 설치하고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을 조직했다.

해동통보

이름은 왕옹(王顒)이고 문종의 셋째 아들이며 대각국사 의천의 형이다. 조카 헌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이자의의 난을 진압한 뒤 헌종에게서 왕위를 넘겨받았다. 재위 10년 동안 화폐 발행, 남경 건설, 관학 정비, 여진 정벌 준비 같은 굵직한 정책을 폈다. 백과사전은 이러한 개혁 정책을 같은 시기 송의 왕안석 신법과 견주어 설명한다. 1105년 서경에 행차해 동명왕묘에 제사하고 돌아오다 수레 안에서 죽었고, 맏아들 예종이 뒤를 이었다.[1]

  • 주전관 설치(1097) - 동생 의천이 화폐 사용을 적극 주장했고, 숙종은 화폐를 만드는 관청을 두어 주화를 통용하게 했다. → 주전도감
  • 은병(활구)(1101) - 우리나라 지형을 본떠 은으로 만든 병 모양 화폐로, 입구가 넓다 하여 민간에서 활구라 불렀다.
  • 해동통보(1102) - 동전 1만 5천 관을 만들어 문무 양반과 군인에게 나누어 주고, 개경 거리 양쪽에 점포를 두어 돈 쓰는 이익을 알게 했다. 삼한통보·해동중보 등도 이 무렵 만들었다.
  • 그러나 자급자족적인 농업 경제 속에서 화폐는 널리 쓰이지 못했다. → 고려의 경제

문화와 도읍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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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적포(1101) - 비서성에 쌓아 둔 책판이 상하자, 국자감에 서적포를 두어 책판을 옮겨 보관하고 책을 널리 찍어 내게 했다.[2]
  • 남경 개창(1101) - 김위제의 도참설에 따라 양주를 남경으로 삼고 남경개창도감을 두어 궁궐을 지었다. 윤관 등이 땅의 형세를 살폈고 궁궐은 1104년 완성되었다.[3]
  • 기자 사당(1102) - 예부의 건의로 서경에 기자의 사당을 세워 제사했다.
  • 의천은 숙종의 후원 아래 국청사를 중심으로 천태종을 열었다. → 해동 천태종

여진 정벌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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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년 동여진이 정주 관문 밖까지 내려오자 임간과 윤관을 차례로 보냈으나 모두 이기지 못했다. 윤관이 여진은 기병이고 고려군은 보병이라 졌다고 아뢰자, 숙종은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이루어진 별무반을 만들었다. 숙종은 여진 정벌을 맹세하는 글을 남겼고, 아들 예종이 1107년 윤관을 보내 여진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았다.[1]

고려 왕들의 업적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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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왕
주전도감·해동통보·활구, 서적포, 남경개창도감, 별무반 숙종
국학 7재·양현고, 청연각·보문각, 동북 9성 축조 예종
12목에 지방관·경학박사 파견, 건원중보, 국자감 설치 성종
노비안검법, 과거제, 광덕·준풍 연호 광종
통문관 설치, 응방 설치, 일본 원정 동원 충렬왕
만권당 설립, 각염법(소금 전매), 사림원 충선왕
  1. ↑ 1.0 1.1 숙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고려사』 권11 세가11 숙종 6년, 국자감에 서적포를 설치하게 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고려사』 권11 세가11 숙종 6년, 남경개창도감을 설치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