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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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탁(梁起鐸, 1871~1938)은 영국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펴내 국채 보상 운동을 이끌고, 신민회를 조직했으며, 국권 피탈 뒤 만주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이어 간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에서 태어났고 호는 우강(雩崗)이다. 1895년 선교사 게일과 함께 『한영자전』을 엮었고, 이듬해 독립 협회에 들어가 1898년 만민 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했다. 1904년 일본이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하자 보안회의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그해 7월 18일 베델과 손잡고 국한문 일간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총무 겸 주필을 맡았고, 이듬해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도 냈다. 사장이 영국인이어서 일본의 신문 검열을 피할 수 있었으므로, 신문은 을사늑약을 비판하고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다시 싣는 등 국권 회복 운동의 대변지가 되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