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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호(年號)는 한국의 역대 왕조와 국가가 군주의 재위 연수나 나라의 기년을 나타내려고 쓴 칭호로,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영락에서 시작해 대한 제국 순종의 융희까지 이어졌으며, 독자 연호는 중국과 대등하다는 자주 의식의 표현이었다.

연호는 중국 한 무제의 '건원'에서 비롯되었다. 원칙적으로 황제만 정할 수 있었으므로, 중국 주변의 나라가 중국 연호 대신 자기 연호를 쓰는 것은 대외적으로 자주 독립국임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금석문과 역사책에 독자 연호가 보이며, 조선은 명의 제후국을 자처해 오랫동안 중국 연호를 썼다가 개항 뒤에야 독자 연호를 세웠다.[1]

  • 고구려 - 광개토 대왕의 영락(永樂)은 광개토 대왕릉비로 확인되는 한국 최초의 연호이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의 '연가'처럼 금석문에만 전하는 연호도 있다.
  • 신라 - 법흥왕이 536년 처음 연호를 정해 건원(建元)이라 했다.[2] 이어 진흥왕은 개국·대창·홍제, 진평왕은 건복, 선덕 여왕은 인평, 진덕 여왕은 태화를 썼다. 진덕 여왕 때인 650년부터 당의 연호를 쓰면서 신라의 독자 연호는 끊겼다.
  • 발해 - 왕마다 독자 연호를 하나씩 썼다. 무왕의 인안, 문왕의 대흥, 선왕의 건흥이 대표적이다. 고왕 대조영의 '천통'은 후대 기록에만 전한다.
  • 후삼국 - 궁예는 마진·태봉을 세우고 무태·성책·수덕만세·정개를 썼다. 822년 김헌창은 장안국을 세우고 경운이라는 연호를 썼다.
  • 고려 - 태조는 천수(天授), 광종은 광덕(光德)·준풍(峻豊)을 썼다. 1135년 서경에서 난을 일으킨 묘청은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라 했다(→ 묘청의 난).
  • 조선과 대한 제국 - 갑오개혁 때 '개국 기원'을 써서 1894년을 개국 503년으로 적었다. 을미개혁 때 건양(建陽)을 처음 연호로 정했고, 1897년 대한 제국 수립과 함께 고종이 광무(光武), 1907년 순종이 융희(隆熙)를 정했다.[3]
  • 광복 이후 - 1948년 「연호에 관한 법률」로 단군 기원(단기)을 공용 연호로 삼았다가, 1961년 법을 고쳐 1962년부터 서력기원을 쓰고 있다.[1]

연호와 왕 짝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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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나라 왕 그 왕의 다른 업적
영락 고구려 광개토 대왕 신라에 침입한 왜 격퇴(400), 백제 공격
건원 신라 법흥왕 율령 반포, 불교 공인, 금관가야 병합
개국 등 신라 진흥왕 한강 유역 확보, 순수비 건립
인안 발해 무왕 장문휴의 등주 공격
대흥 발해 문왕 3성 6부, 상경 천도
광덕·준풍 고려 광종 노비안검법, 과거제
광무 대한 제국 고종 대한국 국제 반포, 광무개혁
융희 대한 제국 순종 재위 중 한일 신협약·국권 피탈
  1. ↑ 1.0 1.1 연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법흥왕 23년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순종실록』 1권, 순종 즉위년 8월 2일 연호를 융희로 고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